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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의 악당, 헤롯 대왕의 무덤이 말하는 진실: 유아 학살과 권력의 허무한 최후

by 붉게타는단풍 2025. 12. 24.

🎄 크리스마스의 악당, 헤롯 대왕의 무덤이 말하는 진실: 유아 학살과 권력의 허무한 최후

 

2025년 크리스마스 이브, 2천 년 전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악당, 헤롯 대왕의 불안한 권력과 허무한 최후를 고고학적 증거와 함께 조명합니다. 베들레헴 유아 학살의 진실과 헤로디움 무덤이 전하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통해 진정한 평안의 의미를 탐색합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늘은 2025년 12월 24일,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트리가 반짝이지만, 2천 년 전 오늘 밤 유대 땅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축복과 기쁨보다는 '공포'와 '비명'이 가득했기 때문이죠. 바로 성경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된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끔찍한 사건을 단순히 성경 속 이야기나 신화로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지층을 파헤치는 고고학은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법한 역사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의 중심에는 당시 유대를 통치했던 '헤롯 대왕(Herod the Great)'과 그가 남긴 거대한 무덤 요새 '헤로디움(Herodium)'이 있습니다.


오늘은 따뜻한 성탄절을 맞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어둠의 왕, 헤롯의 심리를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들여다보려 합니다. 화려한 궁전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불안과 허무한 최후를 통해 진정한 평안이 어디에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건축 천재이자 편집증 환자였던 '두 얼굴의 왕' 헤롯


역사적으로 헤롯은 '건축광(The Builder)'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건설자였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 보게 되는 통곡의 벽(성전 서쪽 벽), 마사다 요새, 가이사랴 항구도시가 모두 그의 작품입니다. 로마 황제조차 그의 건축 능력과 통치력에 감탄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의 통치 아래 유대는 상당한 번영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병적인 열등감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에돔) 사람'이었고, 로마의 힘을 빌려 왕이 된 꼭두각시였기 때문입니다. 언제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킬지, 누군가 내 왕좌를 뺏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편집증적 불안은 그의 통치 방식과 개인사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 헤롯의 가족사를 통해 본 편집증: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차라리 그의 돼지가 되는 게 낫다." 당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남긴 유명한 농담입니다. 유대 율법 때문에 돼지고기는 안 먹으니 돼지는 안전했지만, 자신의 왕위를 위협한다고 의심되면 사랑하는 아내 미리암과 세 아들까지 가차 없이 처형했기 때문입니다. 가족조차 믿지 못했던 그의 불안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권력을 향한 그의 집착은 피로 얼룩진 가족 비극을 낳았습니다.

⛰️ 사막의 인공 화산, 무덤이자 요새였던 '헤로디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베들레헴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기이한 산 하나가 솟아 있습니다. 마치 화산처럼 윗부분이 깎여 나간 원뿔 모양의 산, 바로 헤롯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헤로디움(Herodium)'입니다. 이곳은 여름 궁전, 요새, 그리고 최후에는 자신의 무덤이 될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2007년,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에후드 네처(Ehud Netzer) 교수는 35년의 집념 어린 발굴 끝에 이곳에서 헤롯 대왕의 무덤을 찾아냈습니다. 이 발견은 전 세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죠. 헤로디움은 단순한 여름 궁전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죽은 뒤에도 훼손되지 않을 거대한 '인공 산'을 쌓아 그 속에 자신을 묻었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죽음마저 통제하려 했던 그의 광적인 집착을 보여줍니다.

⚠️ 발견된 석관의 충격적인 상태: 그런데 발견된 헤롯의 붉은 석회암 석관은 처참하게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도굴꾼이 보물을 훔쳐가기 위해 깬 것이 아니라, 누군가 쇠망치 같은 도구로 증오를 담아 내리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서기 66년경 유대 반란 당시, 헤롯을 증오했던 유대인들이 그의 무덤을 파헤쳐 분풀이를 한 것으로 봅니다. 살아서는 절대권력이었으나, 죽어서는 안식조차 얻지 못한 비참한 모습이죠.

👶 베들레헴 유아 학살, 과연 사실일까? 고고학적 재조명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 볼까요? 마태복음 2장 16절에는 헤롯이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다 죽이라"고 명령한 내용이 나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이 사건이 없다며 역사성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과연 성경 속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하지만 고고학적, 인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건의 개연성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마을의 규모: 당시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2025년 현재의 베들레헴과는 달리, 2천 년 전에는 인구가 극히 적었습니다. 인구학자들은 당시 두 살 아래 남자아이의 수를 대략 10명에서 20명 남짓으로 추산합니다. 대규모 학살이 아니었기에 당대 역사가의 주요 기록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헤롯의 잔혹성: 아내와 친아들 셋, 장모, 처남까지 죽이고 수백 명의 바리새인을 처형했던 헤롯의 스케일(?)에서 볼 때, 시골 마을 아이 20여 명을 죽인 것은 역사가가 굳이 기록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악행' 중 하나였을 수 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피로 얼룩진 폭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개연성: 자신이 죽어갈 때 백성들이 기뻐할까 봐, 유력 인사들을 경기장에 가두고 "내가 죽으면 이들도 다 죽여서 강제로라도 곡소리가 나게 하라"고 유언했던 그입니다.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의 말에 발작적으로 반응했을 그의 심리는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그의 편집증적 불안과 권력욕은 충분히 그러한 잔혹한 명령을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왕의 최후: 벌레가 되어 죽다, 권력의 허무함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렸던 헤롯의 마지막은 어땠을까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70세의 나이에 끔찍한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현대 의학자들은 이를 '푸르니에 괴저(Fournier's gangrene)' 등으로 추정하는데, 몸이 썩어 들어가고 벌레가 생기며 극심한 가려움과 통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죽기 직전까지도 그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사람들을 강제로 죽이려 계획하는 등 광기를 보였습니다.

구분 헤롯 대왕 아기 예수
통치 방식 공포와 폭력, 절대 권력 추구 사랑과 섬김, 희생
건축 사업 거대한 요새, 성전 확장 (자신 과시) "내가 성전이다" (내면의 변화)
최후 끔찍한 질병과 고통 속에서 사망, 무덤 훼손 십자가 죽음 후 부활, 영원한 생명
남긴 유산 피와 공포의 역사, 파괴된 흔적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 인류의 희망

"나 외에 다른 왕은 없다"며 스스로 신이 되려 했던 그는, 결국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그토록 죽이려 했던 아기 예수는 2천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가 경배하는 '만왕의 왕'이 되었지만, 화려한 헤로디움에 묻혔던 헤롯은 깨진 돌조각으로만 남았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나요? 권력의 부질없음과 그 허무한 최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 핵심 요약
  • 1. 헤롯은 위대한 건축가였으나 병적인 편집증으로 가족까지 살해한 폭군이었습니다.
  • 2. 헤로디움은 그의 무덤 요새였지만, 그의 석관은 유대인들에 의해 철저히 훼손되었습니다.
  • 3. 베들레헴 유아 학살은 그의 잔혹성과 편집증을 고려할 때 충분히 역사적 개연성이 있습니다.
  • 4. 헤롯은 끔찍한 질병으로 비참하게 죽었지만, 아기 예수는 만왕의 왕이 되어 온 세상의 경배를 받습니다.
권력과 명예를 좇던 헤롯의 삶은 허무한 끝을 맺었지만, 겸손과 사랑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메시지는 2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울림을 줍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헤롯 대왕은 왜 그렇게 잔혹했나요?

A1: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 출신으로, 로마의 힘을 빌려 왕위에 올랐기에 항상 자신의 정통성과 권위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이러한 열등감과 편집증이 극단적인 잔혹성으로 발현되어, 심지어 가족까지 살해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Q2: 헤로디움은 어떤 의미를 가진 유적지인가요?

A2: 헤로디움은 헤롯 대왕이 건설한 거대한 인공 산이자 요새, 그리고 여름 궁전입니다. 이곳에서 2007년 그의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훼손된 석관은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깊은 증오를 상징합니다. 헤롯의 권력욕과 허무한 최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지입니다.

Q3: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요?

A3: 성경에 기록된 이 사건은 요세푸스 등의 유대 역사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아 한때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 규모와 헤롯의 극악무도한 성격을 고려할 때, 20명 내외의 유아 학살은 그의 다른 만행에 비해 '사소한 일'로 간주되어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고학적, 인구학적 연구는 이 사건의 역사적 개연성을 지지합니다.

Q4: 헤롯 대왕의 죽음이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4: 헤롯은 절대 권력을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질병과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거대한 권력과 명예를 쌓아도 결국은 허무하게 끝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반면,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의 겸손과 사랑의 메시지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에게 평안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있나요? 헤롯은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요새를 짓고 칼을 휘둘렀지만, 단 하루도 발 뻗고 자지 못했습니다. 반면, 가장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고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성공과 권력의 성벽은 언젠가 무너지고 깨진다는 것입니다. 40대, 50대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우리도 가끔은 나만의 '헤로디움'을 쌓느라 불안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화려한 트리 밑의 선물보다, 내 마음속 불안을 잠재우고 진정한 평안을 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깊이 묵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헤롯의 깨진 무덤이 아닌, 빈 무덤의 부활 소망을 품는 따뜻한 성탄절 되시길 바랍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