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담과 성경과 세상바라보기

본회퍼의 '선한 능력으로' 절망 속에서 찾은 영적 통찰 심층 분석

by 붉게타는단풍 2025. 6. 10.

본회퍼 목사님의 시 "선한 능력으로"(Von guten Mächten treu und still umgeben)는 그가 1944년 성탄절, 나치 감옥에서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4월에 그는 독일 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그로부터 한달후 독일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하며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었습니다. 즉, 본회퍼 목사는 독일의 패전과 전쟁 종식을 불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한 능력을 신뢰하는 본회퍼의 깊은 신앙을 보여주며, 오늘날 CCM으로도 만들어져서 많은 기독교인에게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하지만 일부 보수적 신학의 관점에서 본회퍼의 신학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기에 이에 대해 이 시를 해석해 봅니다.

 

선한 능력으로 (Von guten Mächten treu und still umgeben)

선한 능력에 우리가 고요히 그리고 성실하게 둘러싸여 있으니,

어떤 일이 닥치든 우리가 용기 있게 마주하리라.

하나님은 밤에도, 아침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새로운 날마다 우리를 도우시리라.

 

오래된 고통이 아직도 우리 마음을 짓누르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우리를 덮쳐도,

오 주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지난날들의 고난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이 구원의 길로 인도하소서.

 

당신의 능력으로 어둠이 우리를 두렵게 할 때,

당신의 정의로운 손길로 우리의 마음을 감싸주소서.

우리가 이 세상의 죄와 고통으로 인해 짓눌려도,

주의 밝은 얼굴로 우리를 위로하소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려 하는 미래의 잔을,

두려워하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받으리니,

당신의 선하신 뜻으로 가득 채우소서,

우리가 기뻐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의 길을 가도록.

 

차가운 침묵과 외로운 밤이 우리를 둘러싸도,

주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동체를 기억하시고,

당신의 영원한 빛으로 어둠을 밝히시고,

우리가 다시 하나 되게 하소서.

 

만일 고통이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의 힘이 바닥나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우리의 영혼을 맡길 때,

당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소서.

 

선한 능력으로 아름답게 보호를 받고,

우리가 확신에 차서 기다리리니,

하나님께서는 밤에도, 아침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리라.

그는 새로운 날마다 우리를 도우시리라.

 

'선한 능력으로' 의 해석

이 시는 본회퍼의 깊은 신학적 통찰을 담고 있으며, 보수 신학 관점에서는 특히 하나님의 주권, 변함없는 신실하심, 그리고 고난 속에서의 은혜와 소망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될 수 있습니다.

 

1절의 고백: 이 시는 인간의 막연한 낙관이나 능력이 아닌,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선한 능력"으로 표현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과 극한 고난 속에서도, 성도는 시편 139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임재 안에 둘러싸여 있음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밤(절망)이든 아침(소망)이든 항상 함께하시며, 히브리서 13:5 말씀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모든 날에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도우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합니다. 이는 성도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과 용기를 주는 근거가 됩니다.

 

2절의 고난과 인도하심: "오래된 고통"과 "고통스러운 날들"은 본회퍼가 나치 감옥에서 겪은 현실적인 아픔과 과거의 상처를 부정하지 않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데서 멈추지 않고, 로마서 8:28 말씀처럼 주님께서 지난날에도 고난 속에서 함께하시고 인도하셨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섭리를 신뢰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길조차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있으며, 베드로전서 1:6-7처럼 우리를 더 깊은 믿음으로 이끄는 성화의 과정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3절의 위로와 보호: 어둠과 죄악이 짓누르는 세상의 현실을 본회퍼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로운 손길이 우리를 감싸고 보호하시며, 시편 42:5 말씀처럼 죄와 고통으로 낙심할 때에도 주의 밝은 얼굴, 즉 하나님의 친밀한 임재와 위로가 임함을 믿습니다. 이는 외부적인 상황의 변화보다 내면 깊숙이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과 소망에 대한 확신으로, 성도가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소망을 붙들게 합니다.

 

4절의 주권적 순종: "미래의 잔"은 본회퍼에게 다가올 죽음이나 극한 고난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는 이것이 욥기 1:21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적인 계획 안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성도는 인간적인 두려움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잔을 믿음으로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듯이, 빌립보서 4:12-13처럼 제자로서 고난까지도 기쁨으로 순종하겠다는 값비싼 은혜의 실천을 나타냅니다.

 

5절의 공동체와 빛: "차가운 침묵과 외로운 밤"은 고립되고 단절된 현실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이 고독 속에서도 히브리서 10:25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 즉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기억합니다. 교회는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요한복음 8:12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연합이며,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원한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요한복음 17:21-23처럼 주 안에서 모든 성도가 다시 하나 될 재림의 소망과 영원한 교제를 바라봅니다.

 

6절의 전적인 위탁과 권능: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인간의 모든 힘이 소진될 때, 성도는 누가복음 23:46 말씀처럼 자신의 영혼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고린도후서 12:9-10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의 권능만이 우리를 다시 강하게 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육신의 소멸과 죽음 앞에서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빌립보서 4:13과 같은 궁극적인 믿음과 위탁의 표현입니다.

 

7절의 확신에 찬 소망: 이 시의 마지막 절은 처음 절의 확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하나님의 선한 능력으로 보호받는다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성도는 다가올 모든 일, 심지어 죽음까지도 하나님 안에서 평안히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밤이든 아침이든, 삶이든 죽음이든 항상 함께하시며 새로운 날을 허락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는 베드로전서 1:3-5 말씀처럼 고난을 넘어선 영원한 구원과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는 성도의 영원한 안식을 찬양합니다.

본회퍼의 이 시는 그의 고백처럼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에 뿌리내린 믿음이야말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는 진정한 힘임을 증언합니다.

 

보수 신학 내에서의 비판적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회퍼의 이 시와 그의 신학적 여정을 보수 신학 내부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주로 다음과 같은 지점들에서 제기될 수 있습니다.

 

첫째, "선한 능력"의 근원에 대한 오해 가능성입니다. 일부 보수 신학자들은 이 시가 자칫 인간의 긍정적인 사고나 개인적인 내면의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시가 담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인간의 주관적인 낙관론으로 희석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초월적인 개입과 구원 역사가 강조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인간의 경험이나 의지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을 경계할 수 있습니다.

 

둘째, 고난 해석에 대한 차이입니다. 본회퍼는 고난을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적 참여로 보았고, 때로는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정치적 저항까지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접근이 고난을 통한 영적 성숙이나 순교적 신앙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사회 참여나 정치적 행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 비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일차적인 목적이 개인의 성화나 복음 전파에 더 집중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는, 본회퍼의 적극적인 세상 참여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셋째, '세속적인 기독교' 또는 '종교 없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우려입니다. 비록 이 시 자체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본회퍼의 후기 신학 사상 중 '성숙한 세계의 하나님', '종교 없는 기독교'와 같은 개념은 일부 보수 신학자들에게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교리나 전통적 신앙 형태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가 내포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의미가 전통적인 교회의 역할이나 성경적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선한 능력으로'는 본회퍼의 깊은 신앙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시이지만, 이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보수 신학 내에서도 강조점이나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본회퍼의 신학이 가진 풍부함과 동시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 가운데 있던 그가 시를 통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확실한 소망을 노래한것은 비판적으로만 바라볼수없는 간절함과 진실됨이 있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본회퍼 목사와 선한 능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