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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스메이커'와 '힘에 의한 평화'의 역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by 붉게타는단풍 2025. 8. 30.

🕊️ '피스메이커'와 '힘에 의한 평화'의 역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피스메이커'와 '힘에 의한 평화'

 
평화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대화와 중재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얻어지는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유래한 '피스메이커'와 냉전 시대의 산물인 '힘에 의한 평화'라는 두 가지 개념을 통해, 우리가 마주한 평화의 역설을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 '피스메이커'와 '힘에 의한 평화', 그 시작은?

성경 마태복음 5장 9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화평케 하는 자'가 바로 피스메이커(Peacemaker)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싸움을 멈추게 하는 것을 넘어,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중재자를 뜻해요. 이들에게 평화는 대화와 이해, 그리고 타협의 산물입니다.


반면,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는 냉전 시대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통해 유명해진 개념이에요. 당시 미국은 소련의 군사력에 맞서 압도적인 힘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들에게 평화는 상대방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의 균형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거죠. 힘이 있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논리는 수많은 국제 분쟁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 역사 속 '힘에 의한 평화'의 명과 암

이러한 '힘에 의한 평화'의 개념은 인류 역사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약 200년 동안 지속된 로마의 평화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민족을 정복하고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피정복민의 희생 위에서 세워진 것이었죠. 이처럼 힘에 의한 평화는 질서를 가져오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과 억압을 낳는다는 역설적인 그림자를 품고 있습니다.


이 두 개념이 흥미롭게 합쳐지는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피스메이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콜트 싱글 액션 아미(Colt Single Action Army) 리볼버입니다. 이 총은 19세기 말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사용되었는데, "내 총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듯, 강력한 무력이 오히려 무법지대에 질서를 가져온다는 아이러니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부드러운 단어와 '총'이라는 폭력적인 이미지가 결합된 거죠.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윈스턴 처칠은 고대 로마의 격언인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를 신념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히틀러의 팽창주의에 맞서 영국이 군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직 압도적인 힘만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에는 비판받기도 했지만, 결국 히틀러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힘에 의한 평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최악의 사례입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과 '핵 위협'이라는 극한의 힘 대결 속에서도 끈질긴 대화를 통해 파국을 막아냈습니다. 이 사례는 압도적인 힘만으로는 평화를 담보할 수 없으며, 결국은 대화와 협상이 병행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 진정한 '피스메이커'의 조건: 힘과 마음의 공존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현대에도 유효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북한 비핵화를 위한 '피스메이커'로 지목하며 중재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피스메이커'인 대화와 타협만으로는 북한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죠. 이 대통령은 결국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서는 트럼프가 가진 '힘에 의한 평화'라는 강력한 지렛대가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자(피스메이커)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힘을 지닌 자(힘에 의한 평화)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두 개념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를 위한 노력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정의로운 전쟁'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목적이 살상이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죠. 힘은 평화를 지키는 '수단'일 뿐, 평화 그 자체의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정한 피스메이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협상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과 두려움에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강력한 힘을 가졌더라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낳을 수 있습니다. 힘을 갖추는 동시에, 그 힘을 오직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적인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사용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삶 속 '피스메이커'와 '힘'

이러한 평화의 역설은 국제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할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의 위치나 권위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적인 차원의 '힘에 의한 평화'인 셈이죠.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표면적인 평화를 가져올지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해 더 큰 불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피스메이커'가 되려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의 논리를 벗어나, 공감과 소통이라는 '무기'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사회에서 '피스메이커'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의도를 갖는 것을 넘어섭니다.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갖추면서도, 그 힘을 오직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적인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사용해야 해요. 힘도 있어야 하고, 마음도 있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평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