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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현충일의 의미: 희생, 트라우마.. 그리고 회복

by 붉게타는단풍 2025. 6. 6.

모윤숙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대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어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피 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숲을
이순신 같이 나폴레옹 같이 시이저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머나먼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 같이
뻗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로움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젖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상실을 넘어선 집단적 회복탄력성

 

이 시는 해석이 없더라도 시 자체로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 시입니다..  6.25 전쟁 당시 산화한 젊은 국군 장병의 내면과 그가 남긴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현충일의 본질적인 감성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라는 구절은 삶의 가장 찬란한 시기에 꺾인 생명, 즉 조기 상실(premature loss)이 주는 비극성과 그 뒤에 남겨진 깊은 애도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은 전쟁이라는 집단 트라우마가 개인의 행복과 관계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기는지를 드러냅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존자 죄책감과 함께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이 시는 죽음의 참혹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머나먼 하늘까지'와 같은 구절은 필사적인 전투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려는 강렬한 의지와 삶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용기로 승화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시인의 시선이 죽은 병사의 '얼굴의 땀방울'을 씻어주는 '미풍'과 '푸른 별'에서 '위안'을 찾는 모습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노력을 암시합니다. 이는 비극적 상실 이후에도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발휘하려는 인간 본연의 힘을 나타냅니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라는 외침은 개인의 죽음이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숭고한 헌신으로 승화됨을 보여줍니다. 이는 상실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이자,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심리적 기제인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죽은 이의 목소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부분은,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애도와 책임을 촉구하는 메시지입니다.

특히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일으켜라"는 구절은 현충일이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추모하는 날을 넘어, 미래를 향한 강력한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현실의 어려움과 집단적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집단적 회복탄력성(Collective Resilience)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전사한 이들의 목소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와 사명감을 불어넣어,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공동체의 생명을 다시금 활기차게 '불러일으키라'고 독려합니다.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는 마지막 염원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조국의 행복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과, 희생이 결국은 더 큰 생명과 평화의 터전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보여줍니다.

 

현충일은 이러한 시의 메시지처럼, 과거의 비극적 희생을 기억하고 건강하게 애도함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재확인하는 날입니다. 이는 죽음과 고통을 직면하고 통합하며, 궁극적으로는 그 희생이 가져온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수호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지속적인 회복 작업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용감하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시인 모윤숙과 그 시대의 목소리

모윤숙 시인(1910-1990)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인물로, 특히 민족의 격동기에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뜨거운 감성을 담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6.25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시인의 고뇌와 염원이 담긴 대표작입니다. 이 시는 전쟁의 참혹함과 개인의 희생을 미화하는 것을 넘어,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숭고한 가치와 국가를 지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시인의 굳건한 애국심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은 전후 피폐해진 민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신적 지지대가 되었습니다. 모윤숙 시인의 작품은 단순히 문학적 가치를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적 아픔과 회복의 과정을 증언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국군 태극기 국화 6.25 현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