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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기도와 12 제자들을 부르심: 우리를 부르신 이유. 누가복음 6장 12-16

by 붉게타는단풍 2025. 8. 23.

밤샘 기도와 12 제자들을 부르심: 우리를 부르신 이유

Calling of the Apostles

말씀 봉독

누가복음 6장 12절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절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절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절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이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열두 제자를 택하여 ‘사도’로 임명하신 일입니다. 이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예수님은 먼저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12절: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모든 중대한 결정을 내리시기 전에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함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라고 기록하며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열두 제자를 택하는 이 일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막중한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부르시기 위해 깊은 고민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 삶의 중요한 선택, 혹은 감당하기 힘든 사명이 주어질 때, 우리 스스로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기보다 주님처럼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제자들

밤샘 기도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 가운데 열두 명을 특별히 택하여 사도(Apostle, '보냄을 받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13절: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절: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절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이들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평범한 어부들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핵심 제자로서 특별한 순간들을 함께 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사회의 주류층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택하여 위대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8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평범하고 연약한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명단에는 더욱 독특한 배경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는 동족인 유대인에게 멸시받던 직업을 가졌고, 셀롯 시몬은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극렬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을 법한 세리 마태와 열심당원 시몬을 예수님은 한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임을 보여줍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말씀처럼, 복음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심지어 이 명단에는 예수님을 배반할 가룟 유다의 이름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연약함과 미래의 실패까지도 모두 아시면서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완벽한 사람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을 부르셔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제자 공동체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다양성의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회적 인식이 낮은 사람, 그리고 로마에 저항했던 민족주의자까지, 각자의 가치관과 삶의 배경이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종종 보수와 진보, 혹은 세대 간의 갈등으로 분열되곤 합니다. 각자의 신앙적 가치관과 정치적, 사회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서로를 배척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서로 원수 지간이었던 세리 마태와 열심당원 시몬을 한 식탁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그들이 서로의 차이를 버리고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각 지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셨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각자의 은사를 따라 몸 된 교회를 섬기도록 이끄셨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서 있는가입니다. 보수와 진보, 그 어떤 성향을 가졌든, 우리의 공동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임을 기억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더욱 단단히 묶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도 이러한 아름다운 연합의 예가 있습니다. 개화기 무렵, 전북 김제에 세워진 금산교회에는 양반 출신의 지주 조덕삼이 있었는데 당시 김제의 최고 갑부였고 동네 많은 사람들이 조덕삼의 소작농이였다. 조덕삼이 41세 이자익은 26세로 17살부터 조덕삼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고 조덕삼의 선처로 결혼과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1909년 둘은 공교롭게도 초대장로 후보에 올랐으며, 모두들 조덕삼으로 될것으로 알았지만, 교인들의 투표결과는 노비 출신이었던 이자익을 장로로 세우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것입니다. 모두 당황하여 술렁거릴때 조덕삼은 ‘우리 금산교회는 참으로 휼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라고 말했고 그는 죽을 때까지 이자익 장로를 지지하고 후원해 주었습니다. 이자익이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할때도 모든 학자금과 생활비 일체를 지원했고, 후에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이자익 목사는 장로회 총회장을 세번이나 역임했고 정부에서 체신부 장관등에 입각을 제의했지만 겸손하게 거절을 하였고 남은여생을 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사역에 매진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서로 원수 지간이었던 세리 마태와 열심당원 시몬을 한 공동체로 묶으셨던 것과 같은, 오직 복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해 하시고자 했던 일

당시 제자들에게 주셨던 사명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들을 택하셨을까요? 마가복음 3장 14-15절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가복음 3:14-15)

이 구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려 함"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역의 가장 중요한 훈련입니다.

둘째, "보내사 전도도 하며"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명령을 통해, 제자들이 단순히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셋째,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함"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또한, '열둘'이라는 숫자는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며, 예수님께서 이들을 통해 옛 이스라엘을 계승하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이 공동체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 이후,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어지는 제자의 사명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신 의미는 단순히 그 시대의 사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부르심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중요한 사명입니다.

첫째, '삶으로 동행하는 제자'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과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배우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선포하며, 예수님과의 동행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됨을 강조합니다.

둘째,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사명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전도의 사명'과 '증인의 삶'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해외 선교사로 부름받을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의 자리인 가정, 학교, 직장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부름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지금도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부르심이 곧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셋째, '다양성을 존중하고 연합하는 공동체'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다른 배경의 제자들을 한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 제자 공동체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업과 성향, 세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각자의 은사로 교회를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이 연합이야말로 세상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됩니다. 에베소서 4장 4-6절은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말하며, 우리 모두가 한 분 하나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도 부르심을 받은 제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샘 기도 끝에 평범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위대한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 바로 우리를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각자 다른 삶의 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자리가 바로 주님의 사역의 현장입니다.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며 우리를 택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